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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세율이 50%에 달하는 상속세를 피해 고소득층이 대거 해외로 빠져나가고 있다. 주식 매각차액을 제외하면 해외 이민을 갈 때 갖고 나가는 자산에는 세금이 매겨지지 않는다.
재산을 정리하고 상속세가 없는 캐나다, 호주, 싱가포르로 향하는 부자들이 부쩍 늘어난 이유다.
과도한 세 부담이 결국 고액 자산가들 ‘엑소더스’를 야기하면서 양질의 세원 기반마저 허물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민 소득과 자산이 크게 늘고 있는데, 세금은 24년 전 상황을 기준으로 그대로 매기는 바람에 세 부담이 중산층까지 광범위하게 확산됐다는 비판도 많다.
이 중에는 상속세를 피해 이민에 나선 경우도 많은 것으로 추정된다. 실제로 세부 통계가 있는 2022년 기준으로 보면, 국적상실자 가운데 상속세가 없는 캐나다와 호주, 싱가포르를 비롯한 13개국으로 옮겨간 국민(8316명)은 최근 10년 새 2배 늘었다. 전체 국적상실자 10명 중 3명(32.7%)이 상속세를 매기지 않는 나라로 이주한 셈이다.
최근 영국 투자이민 컨설팅업체 헨리 앤 파트너스는 올해에만 국내 부자 1200명이 무더기로 한국을 떠날 것으로 봤다. 자산가 이탈 규모는 중국(1만5200명), 영국(9500명), 인도(4300명)에 이어 세계 4위 수준이다.
헨리 앤 파트너스는 금융 자산만 최소 100만달러(13억8000만원) 이상 쥐고 있는 부자들이 다른 나라에서 6개월 이상 머문 경우를 기준으로 삼아 자산가 이탈 규모를 추산했다.
자산가들이 가장 많이 정착하는 나라로는 아랍에미리트(UAE), 미국, 싱가포르, 캐나다, 호주가 손꼽혔다. 모두 개인 소득세나 상속세가 없거나 세 부담이 크게 낮은 나라다.
기획재정부 고위 관계자는 “부자들이 해외로 빠져나간다는 것은 국내에서 걷을 수도 있는 풍부한 세원이 해외로 빠져나간다는 뜻”이라며 “세수 기반을 잃지 않기 위해서라도 상속세제 개편이 필요해진 상황”이라고 전했다.
더 큰 문제는 높은 세부담이 중산층으로도 빠르게 옮겨가고 있다는 점이다. 상속세 제도는 2000년 최고세율이 45%에서 50%로 높아진 후 변동이 없다. 반면 그동안 경제 상황은 크게 달라졌다. 2000년 1428만원에 불과했던 1인당 국민총소득(GNI)이 지난해 4725만원으로 3배 넘게 뛰었다.
매일경제가 KB월간주택가격동향과 통계청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올해 서울지역 아파트 193만1000가구 중 10억원이 넘는 아파트 비중은 39.9%(77만2400가구)로 이미 상당수 국민이 과세권에 들었다.
이 같은 흐름이 계속된다면 2030년 서울에서 상속세를 부담해야 하는 가구 비중은 80%로 급증할 것으로 추산됐다. 과세대상이 되는 전국 아파트 비중도 올해 5.9%에서 2035년 32.6%까지 빠르게 증가할 전망이다.
우병탁 신한은행 부동산팀장은 “자산가치의 상승으로 예전에는 부자라고 생각할 수 없는 사람들도 상속세 대상이 됐다”고 말했다.
정부는 최대주주 할증평가를 폐지하고, 가업상속공제와 배우자 공제 한도를 늘리는 방식의 세법 개정을 추진 중이다. 하지만 보다 근본적으로 주요국 대비 높은 세율 인하나 자본이득세 도입 같은 처방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많다.
최근 성태윤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여러 국가가 기업 상속시점에 세금을 매기는 것이 아니라 차후 기업을 더 안 하고 팔아서 현금화하는 시점에 세금을 매기는 자본이득세 형태로 전환하고 있다”며 “우리나라도 자본이득세로 전환하는 전반적 개편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