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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주소현 기자] 어느 날 갑자기 출몰한 검은 벌레 떼, 러브버그. 재작년 서울과 수도권 서북부를 중심으로 처음 모습을 드러낸 검은 벌레떼는 지난해에는 서울과 경기도 남부로 번지더니, 급기야 올해는 충청도와 경상도에서 목격 신고가 이어졌다.
그런데 일순간 이 러브버그가 사라진다면, 어떨까? 기후변화의 측면에서는 오히려 나쁜 신호일 수 있다. 러브버그조차 떠날 정도로 무더운 기후에 접어들었다는 뜻일 수 있어서다.
러브버그는 파리목 털파리과에 속한 벌레들을 통칭하는 이름이다. 수도권을 중심으로 나타난 러브버그는 붉은등우단털파리로 외래종이었지만, 올해 충북과 경북에 나타난 러브버그는 검털파리다. 검털파리는 전국에 분포하는 재래종인데, 도심에도 떼로 등장했다.
박선재 국립생물자원과 기후환경생물연구과 연구관은 “4월 말부터 5월 초 한꺼번에 성충들이 짝짓기를 하고 생을 마감한다”며 “주로 산지에서 많이 서식하는 종이었는데 최근 도심 주변에서 발생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외래종이든 재래종이든 러브버그는 일상 생활에 방해가 될 정도로 개체 수가 많아졌다. 특히 러브버그가 눈총을 받는 건, 짝짓기를 하며 천천히 비행하는 모습이 징그러워서다. 단기간 짝짓기가 집중된다는 점도 있다.
러브버그 떼로 골머리를 앓던 건 우리뿐 아니다. 약 100년 전 미국에도 중남미 등지에서 러브버그가 갑작스레 유입됐다.
러브버그가 달갑지 않은 건 미국인들도 마찬가지였다. 심지어 미국에서는 러브버그가 4~5월 9~10월 연 2회나 짝짓기를 한다. 이에 미국인 사이에서는 ‘러브버그가 모기를 잡아먹는다’, ‘모기를 없애려 일부러 러브버그를 풀었다’는 괴담이 돌기도 했다.
문제는 지난해 가을부터 미국 남부 플로리다 등지에서 러브버그가 자취를 감췄다는 점이다. 2021~2022 러브버그 개체 수가 조금씩 줄어드나 싶더니 2023년에는 눈에 띄지 않을 정도로 사라졌다. 성가시던 러브버그가 사라졌는데도, 미국인들은 홀가분하기는커녕 러브버그의 안위를 걱정하기 시작했다.
러브버그의 나타났던 것과 마찬가지로 사라진 데 대한 원인도 명확하지 않다. 자동차 배기가스나 기생충, 병원체의 공격 등도 거론된다. 그 중에서도 가장 유력한 원인은 기후변화와 환경오염이다. 이들도 지난해 기록적인 폭염과 가뭄을 겪었다.
노멘 레플라 플로리다 대학교 곤충학과 교수는 “우리가 보는 변수는 기후, 서식지, 오염”이라며 “전세계적으로 곤충 종의 40%가 감소하고 있다. 기후가 바뀌면서 많은 유기체에 압력을 가한다. 러브버그도 그 중 일부”라고 설명했다.
수도권에서부터 남부 지방으로 영역을 넓히고 있는 러브버그를 기후변화의 지표로 받아들여야 할 수도 있다. 러브버그는 28~30도의 고온다습한 환경에서 주로 활동하기 때문이다. 따뜻한 겨울도 필수다. 초여름 날아다니는 러브버그들은 전년 여름에 태어나 1년 간 낙엽 더미에서 살아남은 개체들이기 때문이다.
처음 러브버그를 접한 시민들은 놀란 마음에 방역 민원이 많다고 하지만, 해로운 벌레는 아니다. 오히려 익충으로 잘 알려져 있다. 애벌레는 땅의 유기물을 분해하고, 성충은 꽃의 꿀을 먹어 식물의 수분을 돕는다.
짝짓기가 한창인 1~2주만 잘 버티면 러브버그는 어차피 생을 마감한다. 과도한 방역이 러브버그뿐 아니라 생태계 전체를 교란할 위험이 크다.
충남농업기술원은 “최근 잦은 비와 고온 등 기상변화가 검털파리 증식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추정된다”며 “검털파리가 사람에게 혐오감을 주거나 작업 활동 시 불편함을 줄 수 있지만 인체나 작물에는 해를 끼치지 않는 만큼 과도한 화학적 방제보다는 친환경·물리적 방법으로 쫓는 것을 권장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