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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균, 안홍기 기자]
지난 5월 28일 '순직 해병 수사 방해 및 사건 은폐 등의 진상규명을 위한 특검법안'(채 상병 특검법)이 국회 재의결에서 부결된 직후,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8월 초 개인 휴대전화로 네 차례(2일 3번, 8일 1번)나 이종섭 당시 국방부 장관에게 전화를 건 사실이 확인됐다.
윤석열-이종섭 3번 통화한 그날 전후, 무슨 일 있었나
윤 대통령이 이 장관에게 전화를 건 지난해 8월 2일은 임성근 해병1사단장 등 8명에게 업무상과실치사 혐의가 있다고 판단한 해병대 수사단이 수사기록을 경찰로 이첩했던 날이다.
이날 해병대 수사단이 기록이첩을 마친 시각은 오전 11시 50분께, 이로부터 17분 후 윤석열 대통령으로부터 첫 번째 전화가 우즈베키스탄에 출장 가 있던 이종섭 장관에게 걸려왔다. 윤 대통령이 2012년부터 사용했던 개인 휴대전화였다.
이보다 앞서 지난해 7월 31일에도 이종섭 장관이 자신의 결재를 뒤집고 갑자기 해병대 수사단의 브리핑을 취소시키기 직전에도 대통령실 전화를 받은 사실 역시 확인됐다.
박정훈 대령은 이날 오후 김계환 해병대사령관으로부터 "대통령실 회의에서 VIP가 격노하면서 (국방부) 장관과 통화한 후 이렇게 됐다"는 말을 들었다고 지금까지 일관되게 주장해 오고 있다. 박 대령이 "정말 VIP가 맞느냐"고 물었고 김 사령관은 고개를 끄덕였다고도 했다.
위성곤 : "'대통령께서 격노하면서 국방부 장관을 연결하라고 해서 이런 일로 사단장까지 처벌하게 되면 대한민국에서 누가 사단장을 할 수 있겠느냐고 질책했다'고 하는데... 이런 얘기를 들으신 적이 없나?"
이종섭 : "내가 제시해 주신 저 내용 가지고 직접 들은 얘기는 없다."
위성곤 : "그러면 김태효 안보실 차장과 통화했나?"
이종섭 : "안보실 누구하고도 통화한 적 없다."
신범철 국방부 차관 역시 지난해 8월 30일 예결위 회의에서 "국방부 장관이 대통령과 통화를 했느냐"는 민주당 진성준 의원의 질문에 "통화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진 의원이 "어떻게 아느냐"고 다시 묻자 신 차관은 "제가 장관께 여쭤봤다", "장관님 누구와 통화하신 적 있느냐고 하니까, 없다고 했다"고 말했다.
외압의 근원지로 지목된 대통령실 관계자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당시 조태용 국가안보실장은 지난해 8월 30일 국회 운영위원회에 나와 대통령실 외압 의혹을 부인했다.
민병덕 : "지난 7월 31일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이 사건에 대해 대통령에게 보고했나."
조태용 : "그런 사실이 없다."
그러나 대통령실의 해명과 다른 증거들이 나오면서 대통령실과 여당의 반응은 계속 바뀌었다.
채상병 특검법 21대 국회 처리를 앞둔 지난달 9일 윤석열 대통령은 취임 2주년 기자회견에서 직접 이 사안을 언급했다.
해병대 수사단 조사 결과에 대한 외압 의혹과 격노설과 관련 질문에 '생존자를 구조하는 상황이 아니라 주검을 수습하는 일인데 왜 무리하게 진행해서 인명 사고를 냈느냐'는 취지로 당시 이종섭 장관을 질책했다고 답변했다. 외압 의혹에 대한 즉답을 피하고 동문서답을 한 셈이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김계환 해병대 사령관의 휴대전화에서 'VIP 격노설'을 뒷받침하는 녹취 파일을 확보하고, 관련자들의 추가 진술을 확보하자 성일종 국민의힘 사무총장은 지난달 26일 KBS에 출연해 "대통령이 문제가 있다고 격노하면 안 되나. 격노한 게 죄냐"고 대통령을 적극 엄호하고 나섰다. 대통령의 격노로부터 시작되었다고 의심 받고 있는 외압 의혹을 규명하자는 것인데, 엉뚱하게 대통령 격노의 정당성을 설파한 셈이다.
더욱이 군형법상 항명 및 상관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해병대 수사단장 박정훈 대령 심리를 진행하고 있는 군사법원이 최근 이종섭 장관 및 관련자들의 통신 기록 조회를 받아들이면서 윤 대통령이 직접 이 장관과 통화했다는 사실이 밝혀지자 대통령실의 설명은 또 달라졌다. 말이 달라졌을 뿐만 아니라 우왕좌왕하는 모습까지 보이고 있다.
지난달 31일 MBC 뉴스데크스 보도에 따르면, 대통령실 고위관계자는 "해병대 수사단에서 채 상병 사망사건에 대해 혐의자로 8명을 지목해 경찰에 넘긴다고 하자 참모들이 문제가 있다고 보고했고, 대통령이 바로 잡으라고 지시했다"고 밝혔다.
이 고위관계자는 "통수권자인 대통령이 야단도 칠 수 있고, 재발 방지 요청할 수 있는 것 아니냐"고도 했다. 또 지난해 7월 31일 예정된 브리핑을 취소하고 이첩 보류 지시를 내렸던 당시 '02-800'으로 시작하는 대통령실 전화로 이 장관에게 연락한 것은 대통령이 아닌 참모였다고 설명했다.
처음에는 'VIP 격노설' 자체를 부정하다가 "대통령은 격노하면 안 되느냐"고 했다가, 이제는 '대통령이 관여하긴 했지만 법적으로 아무 문제될 게 없다'는 식으로 태도가 바뀐 셈이다. 대통령실이 'VIP 격노설'을 기정사실화하자, 'VIP 격노는 박정훈 대령의 망상에 불과하다'고 강변하면서 구속수사의 필요성을 주장했던 군 검찰의 주장이 무색하게 됐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들을 인용한 보도는 이후에도 이어졌지만 저마다 온도 차가 느껴져 '중구난방' 해명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지난달 31일 YTN은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가 "'(지난해 8월 2일) 세 차례 통화에 채 상병 관련 언급은 전혀 없었다'고 밝혔다"고 보도했다. 다른 관계자도 당시 이 전 장관이 우즈베키스탄에 출장 갔던 기간인 만큼 방산 등 상대국 현안과 관련해 통화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대통령과 국무위원의 통화는 자연스럽다'던 기존 입장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 것이다.
이러한 해명에 대해 부승찬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오마이뉴스>와 한 통화에서 국방부 장관 정책보좌관을 지낸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문재인 대통령 당시 국방부 장관과 직접 전화통화를 한 적은 없었다"면서 "업무와 관련되어서는 주로 국가안보실장과 통화하는 것이 통례였다"고 설명했다.
또 휴가 중인 대통령이 보안에 취약한 개인 휴대폰으로 해외 출장을 나가 있는 국방부 장관에게 국제전화를 건 것은 고도의 기밀이 요구되는 대통령 직무의 특성에 비추어 볼 때 상당히 부적절했다는 지적 역시 나온다.
무엇보다 '고위 관계자'라는 익명 뒤에서 내놓는 설명이라, 당시 상황을 직접 보거나, 윤 대통령에게 관련 내용을 확인한 이가 하는 얘기인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믿을 수 있는 얘기인지도 분명하지 않다.
박찬대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이날 오전 최고위원 회의에서 채 해병 사망사건 수사 외압 의혹과 관련한 대통령실 해명에 대해 "합법적이었다면 맨 처음부터 인정하지 왜 오리발을 내밀다가 이제 와서 마지못해 인정하냐"고 꼬집었다.
박 원내대표는 "대통령실이 해병대원 순직사건 수사에 대통령 개입 사실을 인정했다"면서 "대통령이 직접 개인 휴대폰으로 이종섭 전 장관과 통화한 사실이 드러나자 뒤늦게 개입 사실을 인정한 것"이라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