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목차



    반응형
     
    [取중眞담] 준비된 현장, 조율된 토론으론 민심은커녕 대파값도 알기 힘들다

    [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기자들이 취재 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롭게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말>

    [안홍기 기자]

     
      농협 하나로마트 양재점 카카오톡 채널에서 홍보한 대파 한 단 가격
    ⓒ 농협 하나로마트 양재점 카카오톡 채널
     
    "그런데 지금 여기 하나로마트는 이렇게 하는데 다른 데는 이렇게 싸게 사기 어려울 것 아니에요."

    서울 하나로마트 양재점에 물가를 점검하러 나온 윤 대통령이 한 단에 875원인 대파의 가격을 보고 한 질문이다. 이어 관계자의 설명이 뒤따랐고, 윤 대통령은 "아 재래시장도?"라는 반응을 보였다.

     

    이어 한 말이 "저도 시장을 많이 가봐서 그래도 875원이면 합리적인 가격이라고 생각이 듭니다"였다. 윤 대통령도 자신이 본 대파 가격이 일반적인 것인지 궁금해 했고, 다른 곳에서도 정부의 납품단가 보조와 할인지원이 적용된다는 설명을 듣고서는 이런 반응을 내놓은 것이다. 이 현장만 보자면 '합리적인 대화' 같다.

     

    하지만, 대통령의 발언을 뉴스로 접한 시민들의 반응은 매서웠다. 이유는, 각 시민들이 일상을 살면서 구입한 대파 한 단은 이보다 훨씬 비쌌기 때문이다. 당시 하나로마트 양재점 대파에는 정부의 납품단가 지원, 농산물 할인 지원, 농협 자체 할인이 적용돼 4250원짜리가 875원이 됐다. 사실 합리적인 가격이라기보다는 파격적인 가격이다.

     

    보도로 대파 가격을 접한 시민들이 이 점포로 몰려갔다는 소식은, 다른 곳에선 이 가격에 사기가 어렵다는 걸 방증한다. 현재의 농산물 가격이 서민생활에 가하는 압박도 고스란히 전해진다. 라면에 꼭 파를 넣고 밥을 볶기 전에 파기름을 내는 기자는 이 점포가 가까이 있지 않다는 게 아쉬울 뿐이다.

     

    의아한 것은, 윤 대통령이 역대 어느 대통령보다도 시장을 자주 방문하고 있는데, 왜 서민들이 들으면 뜨악할 이야기를 했느냐는 것이다.

    윤 대통령의 시장 방문은 올해에만 10번이나 된다. 화재 현장(서천) 방문을 빼면 아홉 차례. 경기 의정부 제일시장, 서울 중곡제일시장, 부산 동래시장, 울산 신정시장, 경남 마산어시장, 충남 서산동부시장, 경남 사천 삼천포용궁수산시장 등 전국의 유명한 시장들을 순회했다. 사실 물가를 점검하려는 목적이라면 굳이 하나로마트를 갈 필요도 없을 정도다.

     

    올해 시장 방문만 열 번인데... 
      
     
      지난 1월 25일 윤석열 대통령이 경기도 의정부시 의정부제일시장을 찾아 어묵을 먹고 있다.
    ⓒ 연합뉴스
      
    윤 대통령이 지난 1월 25일 의정부 제일시장을 방문했을 때, 다른 기자가 대통령실 취재기자들을 대표해 현장을 취재(풀취재)한 내용을 전달받아 보다가 아래와 같은 대화 내용이 맘에 걸렸다.

    상인 : "도와주세요. 시장을 도와주는 게...(말 소리가 안 들림)"
    윤 대통령 : "저거는 뭐죠?"
    상인 : "아귀야."
    윤 대통령 : "아귀 되게 좋아하는데. 건강하십쇼~"

     

    당시 이 상인이 할 말을 다 못한 것 같아서 가게로 전화를 걸었다. '시장을 도와 달라고 하다가 말씀을 다 못하신 것 같다'는 기자의 말에 나이가 지긋한 가게 사장은 "전통시장이 너무 어려우니까, 전통시장을 좀 도와달라고 얘기를 하고 싶었는데 시간이 짧았다"며 "대통령님이 일정이 바쁘시니까 별말씀은 안 하시고 이거는 뭐냐 저거는 뭐냐고 묻고 '건강하시라'고 하고 가셨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대형마트 휴업일을 주말에서 평일로 옮긴다는데, 그에 대해서도 하고 싶은 말씀이 있었느냐'고 물었더니 "아이~ 그런 것까지 다 포함이지~"라고 가게 주인은 말했다. 대통령에게 하고 싶은 말이 많았지만 못 한 것이다.

     

    그날 윤 대통령을 맞이한 시민과 상인들은 "윤석열 파이팅"을 외치며 환영했다. 윤 대통령은 이어 시장 상인들과 함께 부대찌개로 점심을 하며 격의없는 대화를 나눴다고 한다. 다른 시장 방문 현장도 대개 이와 비슷하게 돌아갔다.

     

    조율된 민생토론회 
      
     
      윤석열 대통령이 5일 경기 광명시 아이벡스 스튜디오에서 '청년의 힘으로! 도약하는 대한민국!'을 주제로 열린 열일곱 번째 국민과 함께하는 민생토론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 연합뉴스
      
    대통령은 시장만 많이 가는 게 아니다. 민생을 돌보겠다며 전국을 돌며 이날까지 스물두차례 '국민과 함께하는 민생토론회'를 얼었다(참석은 스물 한 차례).

    '민생토론회'는 일정한 형식으로 진행된다. 대통령의 모두발언부터 시작하는데, 이날 논의될 주제다. 예를 들어 A 정책, B 정책, C 정책을 하겠다고 발표한다. 그 뒤엔 주무부처의 장관 등이 나서 더 상세히 정책을 설명한다.

     

    이후에는 참석한 시민에게 마이크가 넘어가는데, 정부가 한다는 A 정책이 시민 입장에서도 꼭 필요하다는 내용이다. 발언 도중 그 정책을 추진하기로 결정한 윤 대통령에게 감사하다는 인사도 자주 나온다.

     

    그 다음은 담당 공무원 차례. 민생을 위해 꼭 필요한 A 정책을 최선을 다해 성공시키겠다는 발언이다.

    B 정책, C 정책에 대해서도 같은 방식으로 이야기가 계속된다. 토론 사회자는 "발언하실 분은 손을 들어 주세요"라거나 손을 든 사람 중에 "갈색머리 여성 분" 같은 식으로 지목해서 마치 발언자를 즉석으로 지목하는 것처럼 하기도 하는데, 사실 이 행사의 발언자는 미리 정해져 있다. 발언 내용과 분량도 주무 부처가 이미 다 검토한 것이다.

     

    대통령은 토론을 듣고 있거나 중간중간 끼여들어서 즉석에서 지시해 현안을 해결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리고 마무리 발언으로 해당 정책을 반드시 성공시키겠다는 의지를 강조하거나, 관련된 자기의 생각을 길게 얘기한다.

    가끔씩은 참석한 지자체장에게 발언권이 가기도 한다. 발언 내용은 윤 대통령에 대한 감사, 더 많은 지역 현안 해결 요청 등이고, 국민의힘 소속 지자체장 중에는 전 정부 비판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

     

    화재 당한 상인들은 만나지도 못했는데... "상인들은 박수로 감사를 보냈다"

    물가현장점검이나 전국 시장 순회나 민생토론회가 가지는 공통점이 있다. 윤 대통령은 듣고 싶은 말만 듣는다는 것이다. 시장을 찾아가고 민생을 토론한다는데 늘 '준비된 현장'이고 '조율된 토론'이다.

     

    이래서는 시장을 많이 다니는 대통령이 진짜 대파값을 잘 모르는 역설이 이어질 수 있다. 대통령이 민생토론회를 수십 번 했는데도 민생고는 겹겹이 쌓이기만 하는 국가적 불행이 도래할 수 있다.

     

    지난 1월 22일 밤 충남 서천수산물특화시장에는 큰 불이 났다. 다음날 오후 윤 대통령이 화재 현장을 방문했다. 대부분 화재 현장에서 밤을 새운 상인들은 윤 대통령을 만나지 못했다(관련기사 : 서천 화재현장 찾은 윤 대통령, 상인은 안 만나... "불구경하러 왔나" https://omn.kr/276fj).

    대통령과 면담조차 하지 못한 상인들은 거세게 항의했다. 하지만 대통령실은 서면 브리핑으로 "현장에 나온 150여 명의 피해 상인들은 대통령의 방문에 감사를 표하고 눈물로 어려움을 호소했다"면서 "상인 대표는 '대통령께서 직접 방문해 주셔서 정말 감사하다'며 대통령의 방문에 화답했고 현장 상인들 모두가 대통령에게 박수로 감사를 보냈다"고 밝혔다.

     
     
      지난 23일 윤석열 대통령이 서천특화시장 화재현장 방문 당시 자신들을 만나지도 않았다며 피해 상인들이 항의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