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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어지자고 하면 널 죽이고 나도 죽겠다” 극단적 성향 드러내
(시사저널=정락인 객원기자)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에서 만점을 받아 화제가 됐던 명문대 의대생이 여자친구를 살해한 살인범으로 전락하면서 우리 사회에 큰 충격을 주고 있다. 경기도 화성에 사는 최아무개씨(25)는 2018학년도 수능에서 만점을 받은 15명 중 한 명이다.
당시 화성시는 공식 블로그에 최씨 인터뷰를 실으며 "외과의사를 꿈꾸는 웃음 많고 솔직한 청소년"이라고 소개했으며, 최씨는 외상외과 전문의 이국종 교수(현 국군대전병원 병원장)가 롤모델이라고 했다.
최씨가 의사의 꿈을 가진 것은 간호사 출신인 어머니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최씨는 사립 명문대 의과대학에 진학했고, 화성시인재육성재단은 우수 장학증서를 준다.
여러 언론에서도 '수능 만점 공부 비결' 등으로 최씨를 인터뷰하며 유명해졌다. 이런 그가 6년 만에 끔찍한 살인범으로 변신해 세상을 놀라게 하고 있다.
강남역 인근 건물 옥상에서 여자친구를 흉기로 살해한 혐의를 받는 명문대 의대생 최아무개씨가 5월8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 심문에 출석하고 있다. ⓒ시사저널 최준필·freepik
흉기 미리 준비하고 급소만 20여 회 찔러
최씨에게는 동갑내기이자 중학교 동창인 여자친구 A씨가 있었다. 둘은 지난해 초쯤부터 사귀기 시작했다. 최씨는 SNS 프로필에 A씨와 다정하게 찍은 사진을 올리는 등 각별한 애정을 과시했다.
두 사람의 단골 데이트 장소는 서울 서초구 강남역사거리 인근에 있는 15층 건물 옥상이다. 이곳은 평소 개방돼 있으나 건물에서 일하는 직원 등 일부만 출입하기 때문에 인적이 드물다. 젊은 남녀가 은밀하게 둘만의 데이트를 즐기기에는 최적의 장소였다.
그러나 얼마 전부터 연인 관계에 금이 가기 시작했고, 급기야 A씨는 최씨에게 이별을 통보한다. 정확한 이유는 알려지지 않았으나 최씨는 이별을 쉽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다 A씨를 살해하기로 마음먹는다. 5월6일 오후 3시쯤 최씨는 거주지 인근인 화성 통탄의 한 대형마트에서 흉기를 구입한 후 A씨를 둘만의 데이트 장소였던 건물 옥상으로 불러낸다. 얼마 후 이곳에서 만난 두 사람은 대화하다 말다툼을 벌인다.
오후 5시20분쯤 최씨가 갑자기 "죽고 싶다"며 옥상에서 뛰어내리려고 하자 A씨는 말렸다. 그 순간 최씨는 미리 준비한 흉기를 꺼내 A씨를 향해 마구 휘둘렀다. 미처 피할 겨를도 없었다. 최씨는 목 부위만 무려 20여 차례나 찌르며 강한 분노를 표출했다. 급소를 집중 공격한 것으로 볼 때 의학적 지식을 범행에 활용했다는 의심을 살 만하다. 결국 A씨는 과다출혈로 그 자리에서 사망한다.
최씨가 여자친구를 살해한 서울 서초구의 한 건물 옥상 ⓒKBS 보도화면 캡처
범행 후 최씨는 옥상 난간에 서있다가 "옥상에서 한 남성이 투신하려 한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에 제지당한다. 최씨는 "(옥상에) 약이 든 가방을 두고 왔다"고 했고, 경찰이 현장을 다시 확인하는 과정에서 피를 흘린 채 숨져있는 A씨를 발견한다.
경찰은 최씨를 살인 혐의로 긴급체포한 후 관할 서초경찰서로 압송했다. 범행 당시 최씨는 마약을 투약하거나 술을 마신 상태는 아니었다.
그는 경찰에서 "여자친구가 헤어지자고 말해 범행을 저질렀다"고 진술했다. 최씨는 법원의 영장실질 심사에서 계획 범행을 인정했으나 심신미약은 주장하지 않았다. 법원은 "도망갈 우려가 있다"며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경찰 조사 과정에서 최씨가 수능 만점자 출신 명문대 의대생이라는 것도 드러났다. 이 같은 사실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자 네티즌들은 공개된 정보를 조합해 최씨를 범인으로 특정하고 신상을 털어 온라인에 공개했다. 최씨의 이름을 비롯해 얼굴, 출신학교, 학번 등 개인정보가 온라인을 통해 급속히 확산됐다.
그가 재학 중인 대학교 익명 커뮤니티에는 최씨에 대한 폭로가 쏟아졌다. 대부분 최씨가 학교생활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끼치는 등 평판이 좋지 않았다는 내용이다. 최씨가 집단배제를 뜻하는 '기수열외자'였다는 증언도 나왔다.
최씨 대학 동기들의 말을 종합하면 그는 우수한 성적으로 의대에 갔지만 정작 학교생활에는 적응하지 못했다. 의대 공부에 어려움을 느껴 수업에도 자주 빠지면서 2020년에는 한 차례 유급을 당한다. 1년 후배들과 학교생활을 하게 되면서 동기들과의 경쟁에서 뒤처졌다는 상대적 박탈감도 컸던 것으로 보인다. 정부의 의대생 증원에 반발한 의대생 동맹 휴학에도 참여하지 않았다.
최씨가 스마트폰 게임에 빠져있었다는 점도 주목된다. 화성시 블로그에 실렸던 최씨 인터뷰를 보면 그는 초등학교 5학년 이후 수능을 보기 전까지 스마트폰 없이 지냈다. 수능이 끝난 후 스마트폰을 장만했는데, 가장 먼저 한 것이 게임 설치다.
최씨는 인터뷰에서 "각종 게임에 빠져 원없이 즐기고 있다"며 다양한 게임이 깔린 스마트폰 화면을 보여주기도 했다. 최씨는 어릴 적부터 게임을 자주 했고, 고등학생이 된 후에도 공부하다 힘들면 게임으로 머리를 식히고 스트레스를 풀었다고 했다.
친한 친구들 사이에서 게임을 가장 잘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게임이 청소년의 정서 발달에 악영향을 끼칠 수도 있다는 전문가의 지적이 제기돼 왔다. 게임 속 폭력적인 성향을 닮을 우려가 있다는 이유에서다. 최씨의 범행이 게임과 얼마나 연관성이 있는지는 알 수 없으나 다양한 원인 중 하나일 수는 있다.
최씨의 신상이 유포되는 과정에서 피해자인 A씨의 얼굴이 노출되며 2차 피해를 당했다. 이에 대해 A씨의 언니는 SNS를 통해 "동생은 최씨의 계획범죄에 휘말려 수차례 칼로 찔려 죽임을 당했다"며 "저희 가족은 지금 하루하루 고통 속에서 살고 있다. 동생에 관한 억측은 자제해 달라"고 당부했다.
이별을 통보한 여자친구를 살해하고 그 어머니에게 중상을 입힌 김레아가 범행 후 맨발로 걸어나오고 있다. 사진 속 인물은 경찰이 공개한 김레아의 머그샷 ⓒJTBC 화면 캡처
상대를 '내 것'으로 착각하며 강한 집착
지금까지 일어난 '이별 살인' 가해자 중 상당수는 상대에게 강박적인 집착을 보였다. 여기에 끝없는 의심과 소유욕, 일상생활 통제, 무조건적인 증오, 스토킹 등의 성향이 더해졌다.
피해 여성들은 처음에는 '집착'을 사랑으로 착각하다가 점점 더 심해지자 공포를 느끼고 이별을 선언한다. 가해자들은 이때부터 밤낮으로 스토킹을 하며 더욱 집착하다가 심하면 살인으로 끝나게 된다. 피해자가 죽어야만 비로소 이별할 수 있는 것이다. 최씨도 이별을 받아들이지 않고 집착하는 모습을 보이며 소유욕을 표출했다. A씨 앞에서 투신하려는 듯한 행동을 하는 등 극단적 성향을 보인 것도 비슷한 점이다.
3월25일 경기도 화성에서도 이별 살인 사건이 발생했다. 범인 김레아(26)는 같은 대학에 다니는 B씨(21)와 교제하다가 무섭게 집착하기 시작했다. 김씨는 B씨의 휴대전화를 수시로 확인하거나 끊임없이 남자관계를 의심했다.
또 B씨와 다투던 중 휴대전화를 던져 망가뜨리고 주먹으로 그의 팔을 때려 멍들게 하는 등 폭력적인 성향을 보이기도 했다.
이를 참다못한 B씨가 이별을 선언하기 위해 어머니와 함께 자신의 거주지로 찾아오자 흉기를 휘둘러 B씨가 죽고, B씨의 어머니가 전치 10주의 중상을 입은 것이다. B씨는 김씨가 평소 "너와 헤어지게 되면 너를 죽이고 나도 죽겠다"는 말을 하자 무서워서 '헤어지자'는 말을 못 하다가 어머니를 동행했으나 비극을 막지 못했다.
김레아는 지난해 10월 국회 본회의를 통과해 올해 1월25일부터 시행된 이른바 '머그샷 공개법'(특정 중대범죄 피의자 등 신상정보 공개에 관한 법률)의 첫 대상자가 됐다.
지난해 7월17일 오전 6시쯤 인천시 남동구의 한 아파트 복도에서 설아무개씨(31)가 전 여자친구 C씨(30대)를 거주지로 찾아가 흉기로 살해한다. 두 사람은 2021년 운동 동호회에서 만나 처음 알게 된 후 같은 직장에 근무하며 사귀었다.
설씨 또한 C씨에게 강한 집착을 보이며 일상생활을 통제했다. C씨가 이별을 선언하자 그는 곧바로 스토킹에 나섰고, C씨는 스토킹 처벌법 위반 혐의로 설씨를 경찰에 신고한다. 설씨는 법원에서 C씨로부터 100m 이내에는 접근하지 말고 전기통신을 이용한 접근도 금지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경찰은 C씨에게 스마트워치를 지급했다.
한동안 설씨가 스토킹을 중단하자 C씨는 스마트워치를 경찰에 반납했는데, 나흘 만에 죽임을 당했다. 설씨는 계속 C씨를 주시하다가 스마트워치 반납 사실을 알고는 범행에 나선 것이다. 설씨는 범행 당일 미리 흉기를 준비하고 C씨 집에 찾아가 주변에서 기다리다가 출근하려고 나오는 그를 발견하고 흉기를 휘둘렀다.
이 과정에서 C씨가 죽고 범행을 말리던 그의 어머니도 흉기에 양손을 크게 다쳤다. 설씨는 경찰에서 "C씨가 헤어지자고 하면서 나를 무시해 화가 났다"면서도 "스토킹 신고에 따른 보복은 아니었다"고 주장했다.
인천 남동구의 한 아파트 복도에서 출근하던 옛 여자친구를 살해한 설씨가 경찰서에서 검찰로 송치되고 있다. ⓒ연합뉴스
'사적 영역'이라 사고 예방에 한계 도
이별 살인은 2016년 서울 송파구에서 발생한 김정은씨(당시 32세) 사건이 대표적이다. 우리 사회에서 '이별 살인'이 화두에 오른 것도 이 사건 이후 본격화됐다. 김씨와 동갑내기인 범인 한아무개씨는 지인의 소개로 만나 사귀기 시작했고, 처음에는 거의 매일 붙어 다니다시피 했다.
한씨는 아침에 김씨를 출근시켜주고 퇴근할 때도 동행했다. 김씨에게 지극정성이었고, 이는 여자를 위하는 애틋함으로 보였다.
그러나 이런 행동은 점점 병적인 집착으로 이어졌고, 일거수일투족을 보고하지 않으면 불같이 화를 냈다. 결국 김씨는 사귄 지 6개월 만에 이별을 선언했지만 이때부터 협박과 잔혹한 스토킹이 시작된다. 한씨는 거의 매일 김씨가 사는 아파트 앞에 나타났고, 맞은편 교회에 올라가 수시로 집 안을 들여다보기도 했다. 시간이 갈수록 협박 수위도 높아졌고 불법 촬영한 성관계 영상을 인터넷에 퍼뜨리겠다고도 했다.
그러다 결국 범행 도구를 준비한 후 출근하는 김씨에게 흉기를 휘둘러 살해한다. 지금까지 일어난 대부분의 이별 살인은 송파 사건과 비슷한 패턴을 보이고 있다. 향후 일어나는 사건도 같은 양상을 띨 것으로 보인다.
데이트 폭력이나 이별 범죄가 심각한 사회문제화되고 있지만 '사적 영역'이라는 한계가 있다. 수사기관이 예방 차원에서 개입하기 힘들기 때문에 관련 범죄가 끊이지 않는 것이다. 2021년 10월부터 '스토킹 처벌법'이 시행되고 있지만 이것도 최소한의 억제 장치일 뿐이지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다. 결국 이별 살인 피해를 당하지 않는 최선의 방법은 현실적으로 본인이 조심하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