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목차
원화 약세, 금융위기 수준
중동 긴장·美 피벗 불확실성
외국인 매도에 코스피 2.3%↓
닛케이·항셍지수 동반 급락
이스라엘과 이란 간 전면전 위기가 고조되는 가운데 미국의 소비지표마저 예상을 뛰어넘는 수치가 나오자 원·달러 환율이 16일 한때 1400원 선에 진입했다. 1990년 변동환율제도를 도입한 뒤 환율이 1400원대에 도달한 것은 이번이 네 번째다.
미국 중앙은행(Fed)의 금리 인하 시기가 후퇴할 것이라는 전망이 확산하면서 달러화 강세 현상이 나타난 결과다. 국제 유가(브렌트유 기준)가 배럴당 90달러 수준을 유지하는 가운데 이날 코스피지수가 2% 넘게 급락하면서 한국 경제를 둘러싼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날 원·달러 환율은 10원50전 상승(원화 가치는 하락)한 1394원50전에 마감했다. 7거래일 연속 연고점을 갈아치우며 47원40전 급등했다. 환율은 오전 11시31분께 1400원으로 올라섰다. 미국이 급격하게 금리를 올리던 시기인 2022년 11월 7일(1413원50전) 이후 약 17개월 만에 장중 1400원대에 진입했다. 이외에 원·달러 환율이 1400원대를 기록한 것은 1997년 외환위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시기다.
유로화, 엔화 등 6개 통화 대비 달러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인덱스는 전날 장중 106.366을 찍어 5개월여 만에 최고를 기록했다. 지난달 미국 소매판매가 전월보다 0.7% 증가한 7096억달러로, 시장 전망치(0.3% 증가)를 웃돈 결과다.
이날 코스피지수는 2.28% 내린 2609.63으로 마감했다. 외국인 투자자가 2724억원어치를 순매도하며 하락세를 주도했다. 3년 만기 국고채 금리는 0.029%포인트 오른 연 3.469%에 장을 마쳤다. 일본 닛케이(-1.94%)와 홍콩 항셍지수(-2.12%) 등 아시아 증시도 동반 하락했다.
'중동 리스크'에 유독 취약한 원화…"환율 1450원까지 오를 수도"
원·달러 환율 1400원 터치…역사상 4번째
중동 지역의 전쟁 확산 위기감이 높아지는 가운데 미국의 금리 인하 기대가 낮아지면서 16일 원·달러 환율이 장중 1400원 선에 진입했다. 이날 서울 중구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의 대형 디스플레이에 1400원을 찍은 원·달러 환율이 표시되고 있다. /뉴스1
서울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이 1400원대를 기록한 것은 역사상 세 번뿐이었다. 1997년 외환위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2022년 미국의 급격한 금리 인상기 당시다. 16일 오전 한때 환율 전광판에 달러당 1400원이 표시되면서 네 번째 기록이 세워졌다. 강한 미국 경제와 함께 나타난 달러화 강세와 중동지역의 지정학적 불안이 불러온 위험회피 현상이 맞물리면서 원화 약세 흐름이 강화된 결과로 분석된다.
○ 달러화 강세에 연동된 환율
이날 서울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5원90전 오른(원화 가치는 하락) 1389원90전에 개장한 뒤 오전 11시31분께 1400원을 나타냈다. 2022년 11월 7일 장중 1413원50전까지 환율이 오른 이후 526일 만에 처음으로 장중 1400원을 돌파했다. 이후 환율은 1390원대에서 움직이다 10원50전 상승한 1394원50전에 장을 마쳤다. 7거래일 연속 상승세다.
이날 환율 급등은 미 달러화 강세에 연동된 것이었다. 주요 6개국 통화 대비 달러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화지수는 전날 5개월 만에 106대로 뛰었다. 15일 발표된 미국의 3월 소매판매 증가율이 0.75%로 시장 전망치(0.3%)를 두 배 이상 웃돌아 미국 경제가 강한 상태임이 다시 확인됐기 때문이다.
올해 미국 중앙은행(Fed)의 금리 인하 횟수 전망치가 연초 여섯 차례에서 현재 1~2회 수준까지 낮아지면서 달러화가 더욱 강해지는 양상이다.
달러화 강세는 세계적인 현상이지만 문제는 지난주 이후 원화 약세가 유독 두드러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날 엔화 환율도 달러당 154.3엔 선에서 거래되며 34년 만에 최고 수준까지 올랐다. 하지만 이날 오후 3시30분 기준 원·엔 재정환율은 100엔당 902원34전으로 전날 대비 2원62전 상승했다. 원화가 엔화보다 더 약했던 것이다. 위안화 역시 달러화 대비 절하 고시됐지만 원·위안화 환율은 오름세를 나타냈다.
원화가 유독 힘을 못 쓴 것은 이란의 이스라엘 공습으로 인한 중동지역 지정학적 리스크 영향 때문으로 파악된다. 조윤제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은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달러 강세에 비해 원화가 더 절하된 것은 중동 정세와 관련이 있다”며 “한국 경제의 원유 수입의존도가 굉장히 높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중동 사태가 확전으로 치달을 경우 환율이 더 상승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 1440원도 열어놔야
시장 전문가들도 환율 전망치를 높이고 있다. 박수연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2분기 중 원·달러 환율이 1420원까지 오를 수 있다”고 밝혔다. 당국의 개입이 없다면 1450원대까지 오를 수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전규연 하나증권 연구원은 “확전 시 유가 급등 가능성이 있다”며 “단기적으로 1400원대 진입 가능성을 열어둬야 한다”고 했다. 문다운 한국투자증권 연구원도 1440원을 환율 상단으로 제시했다.
일각에선 1400원대 환율이 장기간 이어질 가능성은 낮다는 의견도 나왔다. 박상현 하이투자증권 전문위원은 “펀더멘털을 보면 위기 상황은 아니다”며 “추세적으로 상승한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했다. 조윤제 위원도 “경상수지 흑자가 좋아지고 있고, 외환보유액과 전반적인 펀더멘털이 나쁘지 않다”며 “우리 경제의 전반적인 상황이 우려할 만한 수준은 아니다”고 했다.
○ 외환당국 “환율 움직임 예의주시”
이날 원·달러 환율이 1400원을 찍은 뒤 1390원대에서 움직인 것은 외환당국이 1400원 선을 지키기 위해 시장에 개입한 결과로 분석된다.
이날 오후 오금화 한국은행 국제국장과 신중범 기획재정부 국제금융국장은 공동으로 “외환당국은 환율 움직임, 외환 수급 등에 대해 각별한 경계심을 가지고 예의주시하고 있다. 지나친 외환시장 쏠림 현상은 우리 경제에 바람직하지 않다”며 공식 구두개입에 나섰다. 외환당국이 구두개입을 한 것은 2022년 9월 15일 이후 처음이다.
구두개입 직후 원·달러 환율은 2원가량 급락해 1393원대로 떨어졌지만 이후 하락폭을 일부 반납하면서 1394원50전에 마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