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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억 프로젝트'에 속았다
"JP모간의 고위 간부라며 이름이 새겨진 명함을 보여줬습니다. 유명 기관을 사칭해 명함을 제작할 정도로 치밀할 줄은 몰랐어요." (50대 투자 피해자 엄 모씨)
지난해 11월 엄 씨는 자신을 'JP모간'의 고위 간부이자 교수님이라고 칭한 리딩방 방장의 안내에 따라 한 주식 리딩방 텔레그램에 접속했다.
리딩방 일당은 엄 씨에게 “투자자들의 이윤이 1000억원이 넘으면 해산하는 ‘1000억 프로젝트’에 당신을 끼워주겠다”고 설득했고, 엄 씨는 자신이 수십년간 저축해 온 2억6000만원을 투자했다. 엄 씨는 “(가짜) 수익 창에서 발생하는 수익을 보니 금세 부자가 될 수 있겠다는 착각에 빠졌다”면서 “하루아침에 전 재산을 모두 날렸다”고 하소연했다.
미국 투자은행인 JP모간체이스의 고위 간부라고 속인 뒤 투자자들에게 접근해 돈을 뜯어낸 일당이 경찰에 붙잡혔다. 투자자들은 '바람잡이'들이 올리는 '수익 인증샷'과 실제 주식거래 앱과 비슷한 가짜 홈트레이딩 시스템(HTS)에 속아 사기를 당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이같이 SNS에서 유명인이나 투자 전문가를 사칭해 주식·코인 리딩방에 초대한 뒤 돈을 가로채는 리딩방 사기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사기 일당이 투자자들에게 제시한 JP 모건 가짜 명함. 본지가 해당 회사에 확인한 결과 이들은 직원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사진=독자 제공
경찰, 'JP 모간' 사칭 불법 리딩방 조직 검거
30일 경찰에 따르면 대구 달서경찰서는 JP모간 직원을 사칭해 불법 리딩방 투자사기를 저지른 일당을 입건해 충남경찰청으로 사건을 이첩했다. 해당 조직은 지난해 말부터 카카오톡 채팅방 등에서 JP모간 직원을 사칭해 가짜의 주식거래 앱을 설치하게 한 뒤 투자를 유도해 투자자들로부터 수십억 원을 가로챈 혐의를 받는다.
해당 조직은 투자자가 SNS 링크를 통해 카카오톡이나 텔레그램 채팅방에 접속하면 “고급 투자 정보를 공유하는 단체채팅방이 있다”며 투자자들을 초대하는 식으로 리딩방으로 끌어들였다. 채팅방에선 '바람잡이' 역할을 하는 참여자들이 고수익 투자 인증을 하며 투자자들을 현혹했다.
이들은 가짜 매매 앱인 ‘JPMSM(JP Morgan Special Management)’을 설치하도록 유도했다. 유명 투자은행인 JP모간이 운영 중인 앱이라고 속였다. 투자자들이 고객센터로부터 안내받은 대포통장으로 돈을 입금하면 "장외에서 블록딜로 주식을 싸게 매수해야 한다"며 특정 주식을 매수하라는 식으로 투자자들을 꼬드겼다. 이들은 가짜 수익 창을 이용해 다음 날 장내 매도로 마치 실제로 수익이 나는 것처럼 꾸몄다.
하지만 실제 수익금을 돌려받은 사람은 없었다. 이들은 올 초 투자자들이 돈을 빼려 하자 이들은 "세금을 40% 이상 내야 한다"며 수개월 간 시간을 끌었다. 투자자들에게 수익금을 정리해 송금해준다 약속했지만, 일당은 지난달 16일 채팅방을 없애고 돌연 잠적했다.
늘어나는 투자리딩방 사기…2차 피해 우려도
투자리딩방은 SNS나 투자설명회(온오프라인) 등을 이용해 투자자에게 투자 종목 추천해주고 매매 시점 등을 조언해주는 공간을 말한다. 정식 투자자문업체로 등록되지 않은 업체가 오픈 채팅방 등 온라인 양방향 채널을 통해 유료로 운영하는 주식 리딩방은 모두 불법이다.
투자리딩방 사기는 크게 △가짜 홈트레이딩 시스템(HTS) △비상장 주식 판매 △유명 경제인·투자 자문업체 사칭 등으로 나뉜다. ‘JP모간 사칭’ 리딩방 사기는 가짜 HTS와 유명인 사칭을 결합한 신종 리딩방 사기라는 게 업계의 공통된 설명이다.
리딩방 사기는 최근 급증하고 있다. 경찰청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접수된 투자리딩방 사기 건수는 1783건으로 지난해 4분기 1452건 대비 22.7%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대부분 유명인, 유명 투자회사 등 전문가를 사칭해서 벌어지는 리딩방 사기로, 집계되지 않은 건수까지 포함하면 실제 피해는 훨씬 더 클 것이라는 관측이다.
최근 금융감독원에도 대형 사모펀드 KKR의 CEO ‘조셉 배’, 미국 네트워크 펀드 버텍스벤처스US의 이인식 대표를 사칭한 리딩방 사기 피해가 접수됐다.
신산업의 발달에 따라 테마형 주식투자에 관심이 쏠리고, 쉽고 빠르게 이익을 얻고자 하는 투자자들의 심리를 이용한단 분석이다. 이윤호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사기꾼이 전문가를 직접 사칭하거나 태양광, 2차전지 같은 전문적인 키워드를 바탕으로 접근하면 일반인 입장에서는 신뢰도가 올라간다"며 "저소득 투자자는 어려운 상황에서 벗어나고자, 상대적으로 여유로운 투자자는 더 큰 수익을 올리고자 하는 욕심에 속게 된다"고 설명했다.
리딩방 사기는 2차 피해까지 이어질 수 있어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황석진 동국대 국제정보보호대학원 교수는 "투자사기 피해자들에게 원금을 100% 되찾아줄테니 수수료를 선납부하라는 방식의 2차 사기도 활개치고 있다"며 "돈을 되찾고 싶어하는 피해자들의 마음을 이용한 사기범죄에 대해서 강력하게 처벌할 수 있는 조항을 자본시장법에 성문화해야 한다"고 제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