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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비트와 케이뱅크가 가상자산 실명계정 운영에 대한 업계 합의를 깨 논란이 일고 있다. 투명한 시장 조성을 위한 제도화가 급물살을 타고 있는 가운데 시장 지배적 사업자가 자사 이해관계를 우선해 업계의 룰을 배척하면서 관계기관도 우려를 나타냈다.
15일 금융권 등에 따르면 업비트와 연결된 실명계정을 제공하는 케이뱅크는 이달 초부터 한도계정 해제 조건을 대폭 완화했다.
신규계좌(한도계정) 개설 후 3일 경과, 코인 거래 300만원 이상, 업비트로 3회 입금 등 조건을 충족하면 한도를 풀어준다. 한도가 해제된 정상계정은 1일 입금 5억원, 출금 2억원까지 가능하다.
이러한 케이뱅크의 한도계정 해제 조건은 빗썸, 코인원 등 다른 가상자산거래소와 연결된 은행들에 비해 월등히 유리하다. 농협은행, 카카오뱅크 등은 모두 코인거래 500만원이상, 계좌 개설 후 한달을 넘겨야 한도계정을 정상계정으로 바꿀 수 있다.
'500만원·한달' 합의 있었나
업비트와 케이뱅크를 제외한 다른 거래소와 은행이 현재 동일한 '500만원·한달 이상' 규정을 적용하는 것은 업계간 암묵적 합의가 있었기 때문으로 파악된다.
실제로 원화거래소 협의체(DAXA)는 해당 내용을 직접 만들어 거래소들과 공유했다. 본지가 입수한 DAXA의 '가상자산 실명계정 운영지침 관련 질의사항’ 문서에는 은행이 한도계정을 정상계정으로 전환하는 조건 '1안'에 코인 '순매수금액 500만원', '원화 입금 후 1개월초과' 내용이 담겨 있다.
이 문서는 지난해 11월경 DAXA가 은행연합회에 보낸 문서다. 올해 실명계정 운영지침 시행을 앞두고 한도계정 등에 대한 질의사항이 포함돼 있다. 은행연합회 법무지원실 관계자는 "DAXA에서 질의가 왔는데 모든 안은 DAXA가 만들었고 구두로 답변했다"고 밝혔다.
DAXA는 은행연합회 답변을 받아 각 거래소에 전달하면서 "1안으로 해석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명시했다. 또 "은행들간 협의시 1안으로 해석하기로 했다는 답변을 받았다"고 적시했다.
DAXA의 의장사는 업비트다. 업계는 업비트가 이 내용을 가장 잘 숙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DAXA는 "실명계정 구체적인 운영방식에 대해서 (은행연합회에) 질의해 구두로 답변을 받아 거래소들에 내용을 공유했다"고 밝혔다.
또 금융권에 따르면 거래소에 실명계좌를 제공하는 은행은 은행연합회가 회의를 주관해 따로 회의를 진행한 것으로 파악된다. 한 은행 관계자는 "은행연합회가 회의를 소집해 이야기를 나눴고, 한도해제는 은행 실무끼리 논의를 진행했다"며 "은행연합회와 금융정보분석원(FIU)에도 해당 내용에 대한 보고가 들어간 걸로 알고 있다"고 덧붙였다.
왜 쉬쉬하나...담합이 아킬레스건?
거래소와 은행들이 서로 한도계정 해제 세부안을 서로 협의하고 공유한 정황이 있지만, 대외적으로는 관련 사실을 함구하고 있다.
케이뱅크 측은 한도계정 해제 요건을 낮춘 것에 대해 "업비트와 쌍방 파트너로서 협의를 거쳐 우리가 결정했다"고 밝혔다. 업비트 운영사 두나무 관계자는 "거래소간 한도계정 기준에 대한 합의를 한적은 없고, 이번 건은 케이뱅크가 결정했다"며 "DAXA 사무국이 은행연합회 운영지침에 대해 해석을 문의한 후 가상자산 거래소 회원사에게 내용을 공유해준 것"이라고 말했다.
은행연합회를 비롯한 여러 이해관계자들이 이번 사안에 대해 쉬쉬하는 것은 은행의 거래 조건을 통일시키는 게 공정거래법상의 담합에 해당될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사업자들이 거래 조건을 협의해 경쟁을 제한하면 공정위의 엄격한 조사를 받을 수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거래 조건 통일은 담합 이슈가 있어 서로 떠넘기는 핑퐁게임이 이어질 것"이라며 "약속을 어긴 것에 대한 비난보다 담합 등 이슈가 불거져 공정거래위원회나 금융감독원의 조사를 받는 게 가장 두려운 일"이라고 말했다.
"규정 지킬 필요있나"...시장 혼란 커져
관계기관도 당국도 이번 사안에 대해 직접 개입을 꺼리고 모르쇠로 일관하면서 업계는 혼란에 빠졌다. 업비트와 케이뱅크의 독자행동이 묵인된다면 다른 은행과 거래소들도 한도계정 해제 등 세부 요건에 대한 합의를 지키지 않고 각자 유리하게 정책을 정해도 문제될 것 없다는 얘기도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어겨도 문제없는 합의라면 규정을 지키는 게 어리석은 짓"이라며 "합의를 어긴 업체에 대해 금융당국도 관계기관도 모르겠다고 한다면 협의 사항은 애초 지킬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관련기관인 은행연합회는 케이뱅크와 업비트의 단독행동에 우려를 표명했다. 은행연합회 관계자는 "케이뱅크의 자금세탁방지 역량은 모르지만 한도계정 해제를 3일에 맞췄다면 그만큼 역량이 있다는 것 아니겠냐"면서도 "너무 짧은 기간과 낮은 금액을 기준으로 거래목적을 확인하는 것은 문제가 있고 시장을 혼탁하게 할 우려가 있어 케이뱅크에 우려를 전달했다"고 밝혔다.
한편, 앞서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김희곤 국민의힘 의원은 케이뱅크의 업비트 의존률이 너무 높아 리스크로 작용할 수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지난해 금융위원회와 금감원 국정감사에서 김 의원은 "업비트 관련 예금 비중이 케이뱅크 총 예금의 20%에 육박한다"며 "사실상 케이뱅크는 업비트의 사금고 역할로 전락해 굉장히 위험한 상황으로 반드시 조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