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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 5300자 원고로 민심 전달, 尹 끄덕이며 청취
웃으며 인사… 팔 감싸 안고, 의자 빼주기도
모두발언 이후엔 굳은 표정으로… 긴장감 역력
29일 윤석열 대통령 취임 2년 만에 처음 열린 영수회담의 초반 기싸움에서 우위를 점한 쪽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였다. 날씨 얘기를 주제로 환담이 끝나고 취재진이 퇴장하려 하자, 이 대표가 윤 대통령에게 양해를 구한 뒤 작심한 듯 미리 준비한 모두발언을 15분가량 쏟아냈다. 이에 환한 웃음으로 테이블에 앉았던 윤 대통령도 심각한 표정으로 이 대표 발언을 경청하면서 당초 예상보다 2배 이상 길어진 회담이 시작됐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이날 오후 2시 4분쯤 용산 대통령실 대통령 집무실 앞에서 인사를 나누며 회담을 시작했다. 이 대표는 검은색 정장에 짙은 남색 넥타이, 윤 대통령은 남색 정장에 자주색 넥타이 차림이었다.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 홍철호 정무수석 안내를 따라 집무실 앞에 도착한 이 대표는 환한 웃음과 함께 "아이고, 대통령님"이라며 기다리던 윤 대통령과 악수를 했다.
윤 대통령은 악수를 청할 때 이 대표 팔을 감싸 안으며 친근감을 표했고, 이 대표가 앉을 의자를 직접 빼주며 안내했다. 여유를 보인 이 대표와 달리 뒤따라 윤 대통령과 악수한 천준호 민주당 당대표 비서실장, 진성준 정책위의장, 박성준 수석대변인 표정엔 긴장감도 돌았다.
윤석열 대통령이 29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영수회담에서 집무실에 도착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맞이하며 악수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두 사람은 민주당 측 참석자 및 정 실장, 홍 수석, 이도운 홍보수석과 함께 원형 테이블에 앉았다. 윤 대통령은 "초청에 응해줘서 감사하다"며 "편하게 여러 하고 싶은 말 하자"고 운을 띄웠다. 이에 이 대표는 "오늘은 비가 온다고 했던 것 같은데 날씨가 아주 좋은 것 같다"고 말했고, 윤 대통령은 "저와 이 대표가 만나는 걸 국민들이 고대했기 때문에 이렇게 좋은 날씨를 준 게 아닌가 생각한다"고 화답했다.
이어 취재진이 퇴장하려 하자 이 대표는 "퇴장할 건 아니고, 제가 대통령에게 드릴 말씀 써가지고 왔다"며 정장 안쪽 주머니에서 A4 용지 여러 장으로 된 원고를 꺼냈다. 직접 취재진을 불러 세우면서 예상치 못한 장문의 모두발언을 한 것이다. "(여의도에서 용산까지) 오다 보니까 20분 정도 걸리는데 실제 한 700일이 걸렸다"는 이 대표의 모두발언은 시작부터 공격적이었다.
이 대표는 발언 초반부에 "국민들이 혹시 말 한마디 잘못했다가 잡혀가는 것 아닐까 걱정하는 세상이 됐다" "스웨덴 연구기관에서 (대한민국에 대해) 독재화가 진행 중이라는 연구결과가 발표되기도 한다"며 윤 대통령에게 거북한 얘기를 꺼냈다. '민생' '채 상병 특검 및 이태원 참사 특별법' '의료 개혁' '외교' 등 광범위한 내용을 담은 원고는 약 5,300자 분량으로, 10개에 달하는 요구 사안을 잊지 않기 위해 이 대표가 출력해 지참한 것으로 전해졌다.
모두발언에서 이 대표는 '국민'이라는 단어를 33회나 언급하면서, 총선 민심을 전달하는 자리라는 점을 부각했다. 윤 대통령은 '오늘 발언은 제 입을 빌린 국민들의 뜻이다' '민생이 어렵다' '야당을 국정 파트너로 인정해 달라' '특검법 등에 대한 거부권 행사와 함께 향후 국회 결정을 존중해 주면 좋겠다' 등 대목에서 6차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굳은 표정으로 이 대표 발언을 들은 윤 대통령 못지않게 이 대표나 배석자들 표정도 심각해 보였다.
반면 비공개 회담에서는 윤 대통령이 발언을 주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성준 민주당 수석대변인은 "윤 대통령 답변이 상당히 길었다"며 "85(윤 대통령) 대 15(이 대표) 정도 됐다"고 전했다. 실제 이날 회담은 양측이 주요 현안에 대해 합의를 이끌어내지 못했지만, 당초 예정된 1시간을 훌쩍 넘겨 2시간 15분간이나 진행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