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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멘터리
「 브랜드에도 걸음걸이가 있다고 하죠. 이미지와 로고로 구성된 어떤 브랜드가 사람들에게 각인되기까지, 브랜드는 치열하게 ‘자기다움’을 직조합니다. 덕분에 브랜드는 선택하는 것만으로 취향이나 개성을 표현하고, 욕망을 반영하며, 가치관을 담을 수 있는 기호가 됐죠. 비크닉이 오늘날 중요한 소비 기호가 된 브랜드를 탐구합니다. 남다른 브랜드의 흥미로운 디테일을 들여다보고, 그 설레는 여정을 기록합니다.
」
여러분, 브랜딩과 마케팅의 차이가 무엇일까요? 흔히 혼용하는 말이지만 엄연히 다릅니다. 브랜딩이 장기적 관점에서 브랜드를 각인시키는 작업이라면 마케팅은 그렇게 만들어진 브랜드를 판매하는 방법이죠. 쉽게 말해 브랜딩은 팬을 만드는 작업, 마케팅은 지갑을 여는 전략입니다.
팬을 만드는 작업은 쉽지 않습니다. 바로 매출로 이어지지도 않고요. 그러다 보니 많은 브랜드가 단기적 마케팅에 힘을 쏟는 방식을 택합니다. 물론 아주 드물게, 오랜 시간 지속한 브랜딩으로 매출을 만들어내는 브랜드도 존재합니다.
오늘 비크닉은 브랜딩이 매출로 이어진 좋은 사례를 소개하려고 합니다. 바로 지난 1일 창사 이래 처음 업계 매출 1위로 올라선 시몬스 침대 얘기입니다. 마케팅이 아니라 브랜딩을 통해 MZ 팬덤을 일구고, 이를 결국 매출로까지 연결한 시몬스의 지난 여정을 들여다볼게요.
지난 2020년 4월 서울 성수동에 문을 연 시몬스 하드웨어 스토어. 침대 없는 철물점으로 인기몰이를 했다. 사진 시몬스침대
불황에도 빛 발했다…. 업계 1위 올라선 시몬스
수면 브랜드 시몬스가 창립 이래 역대 최대 매출을 달성했습니다. 지난 1일 발표된 공시 자료에 따르면, 2023년 시몬스 침대의 매출은 3138억원으로 전년 대비 10% 상승했죠. 1992년 한국 법인 설립 이후 최대 매출입니다. 영업이익률도 지난해보다 6% 올라, 10%를 기록했습니다. 매출과 영업이익률 모두 두 자릿수인 이른바 ‘더블-더블’을 기록했죠. 영업이익 또한 319억원으로 전년 대비 170% 상승했습니다.
시몬스의 지난해 성적은 엔데믹 이후 불황을 겪는 리빙 업계에서 이뤄낸 성과라 더 눈길이 갑니다. 좀체 바뀌기 쉽지 않은 카테고리 내 매출 순위도 뒤집어서, 공시 매출 기준 에이스 침대를 제치고 침대 업계 1위로 등극했고요.
지난 1일 시몬스침대는 지난해 매출 3138억 원으로 전년 대비 10% 증가했다고 밝혔다. 그래픽 박현아
매출 상승 요인으로는 베스트셀러인 ‘뷰티레스트’를 위시한 프리미엄 매트리스 시장에서의 경쟁 우위, 폼 매트리스 라인 ‘N32’의 성장 등이 꼽힙니다. 지난 2019년 시작한 ‘D2C(소비자 직접 판매)’ 전략도 유효했습니다.
대리점을 통해 제품을 판매하는 기존 B2B 방식을 벗어나 직영점에서 소비자를 직접 만나 일관된 브랜드 메시지를 전했죠. 하지만 이런 탄탄한 제품력과 영민한 매장 전략이 날개를 단 근본적 요인은 따로 있습니다. 바로 지난 몇 년간 이어진 시몬스의 ‘매력적인 브랜드 만들기’ 전략이죠.
시몬스의 매출 상승의 배경으로는 독보적 브랜딩을 통해 확보한 MZ팬덤이 꼽힌다. 사진 시몬스침대
지금까지 침대 브랜딩은 네모반듯한 침대 모양만큼이나 고루했습니다. 주로 매트리스의 기능적 이점과 수면의 질에 머물렀죠. 그래서 시몬스는 침대에서 벗어나기로 했습니다. 침대를 얘기하지 않고, 시몬스를 얘기하기로 한 거죠.
장면1. 침대 없는 침대 광고로 MZ 눈도장
“흔들리지 않는 편안함.” 시몬스 포켓 스프링의 기능을 함축한 전설적 광고 카피입니다. 시몬스는 이 카피를 신선하게 변주합니다.
지난 2019년 공개된 TV 광고에는 수영장·해변 등을 배경으로 해먹과 선베드에 편안하게 누워있는 모델이 나옵니다. 침대는 그림자조차 등장하지 않죠. 블루·핑크·그린 등 세련된 색감과 감각적 구도를 배경으로 마틴 게릭스의 음악 ‘서머 데이즈(Summer Days)’가 흘러나오고, 끝자락에서야 ‘흔들리지 않는 편안함’이라는 문구가 등장해 시몬스 광고라는 걸 알아차리죠. 편안함이라는 감각을 시각화해, 마치 한 편의 영상 필름을 보는 듯한 만족감을 줍니다.
이듬해에는 편안함을 일상 소재로 엮습니다. ‘매너가 편안함을 만든다(Manners Maketh Comfort)’ 시리즈로 지하철·슈퍼마켓 등 공공장소에서 지켜야 하는 매너를 유쾌하게 짚어냅니다. 이 두 광고는 시청률과 화제성을 모두 잡으며 ‘시몬스는 뭔가 다르다’는 인식을 심어줍니다.
흔들리지 않는 편안함의 테마를 확장시켜, 매너가 편안함을 만든다는 메시지를 전달한 광고. 사진 시몬스침대
실제로 2019년부터 시몬스의 매출은 가파르게 상승해 2000억 원대를 가볍게 넘고 2021년에는 3000억 원대도 넘어섭니다. 코로나19 기간 리빙 업계의 호황을 탔다고 해도, 2년 만에 매출 1000억대 상승이라는 급격한 성장을 이룬 것은 이례적이죠.
장면2. 침대는 못 사도 굿즈는 하나 살 수 있잖아
시몬스 브랜딩의 하이라이트는 지난 2020년 열렸던 ‘하드웨어 스토어’ 팝업입니다. 시몬스 탄생 150주년을 맞아 서울 성수동에 약 두 달 간 문을 연 11.5㎡(3.5평) 철물점이죠.
침대 하나도 전시하기 어려운 작은 공간에 당연히 침대는 없습니다. 대신 브랜드 심볼을 새긴 안전모·작업복·목장갑·볼펜·양말 등이 빽빽이 자리했죠. 구경만해도 재미있다는 입소문이 나면서, 팝업 스토어 앞에는 긴 줄이 늘어섭니다.
시몬스 하드웨어 스토어는 성수동 팝업 전성시대의 포문을 열었습니다. 전파를 타는 TV 광고가 아니라, 사람들이 직접 만지고 체험하는 오프라인 공간으로 브랜드를 알린 최고의 사례가 됐죠. 시몬스 철물점은 오프라인에 세운 거대한 광고판이었습니다.
브랜드를 체험할 수 있는 팝업 스토어는 시몬스 브랜딩 전략의 핵심으로 꼽힌다. 사진 시몬스침대
철물점의 성공은 식료품점으로 이어졌습니다. 공간도 더 넓어졌고, 기간도 넉넉해졌죠. 굿즈 판매뿐 아니라 오래 머무르며 브랜드를 경험하라고 햄버거도 팔았습니다. 부산 해운대와 서울 청담동에 문을 연 ‘시몬스 그로서리 스토어’입니다.
시몬스가 구현한 침대 없는 팝업 스토어는 누적 20만명의 방문객을 기록합니다. 인상적인 것은 자체 굿즈 매출입니다. 시몬스에 따르면 팝업 스토어 굿즈 판매로 낸 매출만 약 11억원에 달했다고 합니다. 시몬스가 팝업 스토어를 거의 2년간 운영할 수 있었던 이유죠. 사람들이 침대는 못 사도 최저 가격이 1000원 정도였던 굿즈는 하나씩 살 수 있었으니까요.
구매 주기가 긴 침대 대신 일상에서 활용할 수 있는 소품 등을 굿즈로 만들어 판매, 브랜드 경험을 늘렸다. 사진 시몬스침대
그리고 바로 이 지점이 시몬스가 팝업 스토어를 연 결정적 이유입니다. 우리가 일생 살 수 있는 침대는 몇 개나 될까요? 10여년을 주기로, 많아야 서너 번 구매하는 침대 브랜드에 대한 경험은 관혼상제만큼이나 간헐적으로 이뤄지죠.
시몬스는 팝업과 굿즈로 브랜드와 소비자 사이의 거리를 좁힙니다. 자주 마주치고 경험하게 해 ‘애착(bonding)’을 형성한 뒤 실제 침대를 구매할 시기가 됐을 때 머릿속에 시몬스를 떠오르게 하는 거죠.
장면3. 착한 일도 하는 네가 좋아
색다른 재미로 호감을 샀다면 이제는 ‘굳히기’에 돌입할 차례입니다. 시몬스가 그동안 공들여온 MZ세대는 가치관에 기반을 둔 소비를 즐깁니다. 어떤 브랜드를 소비하는지가 자신을 말해준다고 생각하는 이들은 브랜드의 진정성에 누구보다 관심이 많죠.
시몬스는 최근 브랜딩 활동의 꽤 많은 비중을 ‘착한 일’에 두고 있습니다. 지난해 2월 출시된 ‘뷰티레스트 1925’는 소비자가 제품을 구매할 때마다 소비자 가격의 5%가 2025년 완공 예정인 삼성서울병원 소아청소년센터 리모델링 기금으로 누적됩니다. 이 기금은 지난해 말 기준 4억원을 돌파했고요.
지난 2월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2024 리빙디자인페어'의 시몬스 부스. 사진 시몬스침대
시몬스답게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에도 한 스푼의 트렌디함을 더하기도 하죠. 지난 1월 선보인 프리미엄 비건 매트리스 ‘N32’는 업계 최초로 비건표준인증원으로부터 컬렉션 전 제품에 대해 비건 인증을 획득했습니다. 먹는 것에서 입는 것, 바르는 것까지 확장하는 비건 소비 트렌드를 반영하는 발 빠른 시도입니다.
침대를 내세우지 않고 친구를 만든다
지난 2022년 선보인 시몬스의 ‘멍 때리기’ 영상 캠페인은 시몬스만의 브랜딩 전략을 상징하는 대표적 콘텐트라고 생각해요. 역시 침대는 등장하지 않는 광고로, 보고 있으면 이상하게 만족감이 느껴지는(Oddly Satisfying Video) 영상이죠. 코로나19의 후유증으로 ‘정신 건강’이 중요해지는 시점에 공개돼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고요.
힐링과 치유가 절실할 때 엉뚱한 방법으로 위로를 던지는 친구. 결국 지난 몇 년간 이어진 시몬스의 브랜딩 전략의 핵심은 ‘사교(socializing)’입니다. 끝없이 소비자들에게 ‘우리 친구 하자’며 말을 거는 활동들이죠. 착하기만 한 친구는 재미없어요. 또 지나치게 무게를 잡는 것도 질색이고요. 적당히 쿨하고 올바른, 무엇보다 함께 하면 재미있는 일이 생길 것만 같은 친구. 바로 시몬스가 지향하는 바죠.
서울 도산대로 옥외 디지털 빌보드에 2022 브랜드 캠페인 ‘오들리 새티스파잉 비디오(Oddly Satisfying Video)'를 선보이는 모습. 사진 시몬스침대
지난해 12월 안정호 시몬스 대표는 사재를 출연해 ‘시몬스 디자인 스튜디오’라는 ESG 브랜딩 회사를 세웠습니다. 기존 시몬스 공간·아트·브랜딩팀을 주축으로 만든 별도 법인이죠. 그동안 익힌 마케팅 재주를 B2B(기업 대 기업)와 교육 사업으로 풀어보겠다는 계획입니다.
무엇보다 딱딱한 ESG가 아니라 재미있는 ESG 아이디어를 제안한다고 하네요.
일관된 브랜딩 전략이 매출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 시몬스. 이번에는 좋은 일을 하면서도 돈을 벌 수 있다는 또 다른 목표를 세웠다고 하니, 즐겁게 지켜볼 일만 남은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