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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젊은 경찰관 사망 사건이 잇따르면서 경찰 내부에서 열악한 근무 여건에 대한 불만이 터져나오고 있다. 인력 부족으로 인한 과중한 업무 집중과 상급 기관의 성과 압박으로 일선 경찰관들이 막중한 부담을 느끼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 2주일간 알려진 경찰 사망 사건은 모두 3건이다. 지난 18일과 22일 서울 관악경찰서·충남 예산경찰서에서 각각 근무하던 경찰관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지난 26일에는 서울 동작경찰서 간부가 뇌출혈로 사망했다. 같은 날 서울 혜화경찰서 소속 간부는 투신을 시도했다가 구조돼 치료를 받고 있다. 이들은 모두 업무 스트레스를 호소해온 것으로 전해졌다.
사망한 이들은 새 부서로 발령이 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젊은 경찰관들이었다. 모두가 사망 전 과도한 업무 부담, 새 보직 발령 후 교육 부족 등을 호소했다고 한다.
지난 18일 사망한 A경위(31)는 지난 2월 관악서 수사과로 발령받았는데 전임자로부터 넘겨받은 사건만 53건이었다. A경위는 상급기관인 서울경찰청으로부터 ‘접수된 지 6개월 이상인 장기 사건을 신속히 처리하라’는 지시를 받으며 압박을 느낀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사망 직전 주변 사람에게 “매일 출근하면 심장이 아프다, 숨이 안 쉬어진다”고 자주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관악서는 “수사관으로서 보유 사건이 특히 많다는 등의 정황이 발견되지 않았다”며 “힘들어 해 하반기 인사에 기동대로 전출할 예정이었다”고 밝혔다.
지난 22일 사망한 B경사(28)도 지난 2월 예산서 경비과로 발령받았다. B경사는 발령 후 해당 과에 경력이 오래된 동료들이 없어 업무 파악에 어려움을 겪었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국회의원 선거·집중호우에 따른 재난상황실 운영 등을 맡으며 부담과 과로를 호소했고, 정신과 진료를 받으며 우울증과 자살 충동에 대한 상담을 해왔으나 사망했다.
경찰 내부에서는 잇따른 사망 사고에 “남 이야기가 아니다”라는 반응이 쏟아졌다. A경위 사망 후 관악서 앞에는 동료들이 보낸 “지켜주지 못해 미안합니다” “지휘부는 응답하라” 등이 적힌 근조화환이 수십 개 놓였다. 경찰 내부망에는 “수사관들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기하급수적으로 사건이 늘었다” “일선 직원들의 아우성을 모른 척하지 말아달라” 등의 글이 올라왔다.
일선 경찰서에서 근무하는 한 경찰은 28일 기자와 통화하면서 “형사기동대와 기동순찰대를 만드는 조직 개편을 하며 일선서 인력이 대폭 줄어든 상황”이라며 “인력 부족으로 업무가 과중해 중간 관리자급도 신임 경찰관들이 업무에 적응할 수 있게 돕기 어렵다고 토로하고 있다”고 말했다.
일선 경찰서에서 근무하는 5년 차 수사관은 “체계적인 수사 교육 시스템도 없는 데다 문제를 제기하면 ‘내부 총질’한다고 손가락질하니 초급 간부들은 체념한다”며 “젊은 간부들 사이에서는 ‘탈경(경찰관 사직)’을 준비하는 것이 당연할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전국경찰직장협의회는 지난 27일 성명서에서 “초임 수사관의 자살 선택 이면에는 경찰 수사 현장의 심각한 문제가 자리 잡고 있다”며 “실적 위주 평가와 기동순찰대·형사기동대 신설에 따른 조직 개편으로 인한 현장인력 부족은 수사 경찰의 업무에 더욱 더 어려움을 겪게 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경찰청장은 실적 위주 성과평가를 즉각 중단하고 인력을 원상 복귀시켜야 한다”고 요구했다. 협의회는 오는 29일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 정문 앞에서 근무 환경 개선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1인 시위를 이어갈 예정이다.
경찰청은 지난 26일 “연이어 발생한 경찰관 사망 사건과 관련해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정밀한 실태 파악에 나서기로 했다”며 “현장 근무 여건 실태진단팀을 꾸려 구조적 문제점을 살펴보고 근무 여건 개선을 비롯한 사기진작에 나설 계획”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