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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 신모씨(44)는 최근에야 병원에서 ‘하지불안증후군’이란 진단을 받았다. 질환 이름은 신씨에게도 낯설지 않았으나, 그는 그동안 자신이 겪는 증상이 하지불안증후군에 해당하리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신씨는 팔과 다리에서 저리거나 설명하기 힘든 불쾌한 감각이 느껴지는 경험을 주로 했다. 하지만 하지불안증후군이라 하면 질환 이름처럼 다리 쪽에만 증상이 나타나는 것이라 생각한 나머지 병원을 찾는 시기가 늦어졌다. 또 자기 전에 주로 증상이 나타난다는 인식이 흔한 것도 문제였다.
그는 “나 역시 자기 전에 증상이 심해 잠을 설칠 때가 많지만 평소 일과 중에도 이따금 증상이 느껴졌던 이유로 전혀 다른 병일 것이라고 잘못 판단했다”고 말했다.
하지불안증후군은 국내에서 10명 중 1명꼴로 발생할 정도로 흔한 질환이다. 환자의 다리를 중심으로 불면증을 부를 정도의 이상 감각이 나타난다는 증상이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세간의 통념과 달리 이 질환은 환자가 느끼는 증상이 매우 다양해 다른 질환으로 잘못 진단될 때도 많다. 또 그냥 지나쳐버리는 등 적극적인 치료를 받지 않았다가 만성적인 불면증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많아 주의가 필요하다.
하지불안증후군은 잠자기 전 다리가 저리고 불편한 증상을 느끼는 질환을 말한다. 다만 단순히 저리고 불편하다고 해서 하지불안증후군으로 진단하지는 않는다.
대표적인 특징은 먼저 다리가 불편한 느낌 때문에 가만히 있을 수가 없어서 다리를 움직이고 싶은 충동이 든다는 점이다. 또, 누워 있거나 앉아 있을 때와 같이 가만히 있는 중에도 이 같은 증상이 생긴다. 잠자기 전 누워 있을 때뿐 아니라 사무실, 영화관, 비행기, 자동차 등에서 오래 앉아 있을 때도 발생한다. 증상이 나타났어도 일어서거나 움직이면 증상이 감소하거나 없어지는 것도 특징으로 꼽힌다.
눕거나 앉으면 나타나는 불편감
자꾸 움직이게 돼 수면장애 불러
치료 없이 방치 땐 만성 불면증도
유전·도파민 결핍 등 원인 추정
카페인 음료 섭취 땐 증상 악화
요가·스트레칭 등 가벼운 운동
철분 섭취·마사지 등 통해 호전
다리에 느껴지는 불편한 이상 감각은 환자마다 매우 다양하게 나타나는데 쑤시는 듯 근질거리는 느낌, 따끔거리거나 타는 듯한 느낌, 전기가 통하듯 찌릿찌릿한 느낌, 칼로 찌르는 느낌, 가려움 등 다양한 불쾌한 감각을 호소한다. 증상이 심한 환자들은 팔을 비롯해 허리나 몸통 부위에서도 불편감을 호소하는 경우가 있다. 환자 중 절반에 가까운 비율로 팔에도 불편감이 나타난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가장 큰 어려움은 이런 증상들이 밤에 특히 잠을 자려고 누워 있을 때 악화된다는 점이다. 이렇게 다리가 저리거나 벌레가 기어가는 듯한 느낌이 든다면 잠들기 어렵다. 다리를 움직이고 싶은 참을 수 없는 충동이 수면 중에까지 나타난다면 수면장애로 이어지기 쉽다.
잠들기도 어려울뿐더러 자주 깨어나게 되고, 활동이 왕성해야 할 낮에도 피로와 함께 의욕 저하, 우울감 등이 동반되니 사회활동에 지장을 초래하고 삶의 질 향상을 저해할 수밖에 없다.
증상이 다양하고 환자마다 다르게 나타나므로 놓치거나 오인하기도 쉽다. 신원철 강동경희대병원 수면센터 교수(신경과)는 “하지불안증후군의 증상은 매우 다양하면서 다른 질환과 유사한 면이 많아 허리디스크, 하지정맥류, 야간다리 경련, 말초신경질환 등으로 오해받기도 한다”며 “한창 활동하는 낮에는 크게 불편하지 않고 아무 움직임이 없는 밤 시간에만 증상이 나타나 잠을 이루지 못한다면 하지불안증후군을 의심해봐야 한다”고 조언했다.
하지불안증후군 전체 환자 중 절반 정도는 유전적 경향을 보인다. 이와 함께 뇌의 도파민 시스템의 불균형으로 나타나는 도파민 결핍이 유력한 발병 원인으로 추정된다. 도파민 결핍은 여러 신경전달물질의 기능 이상을 초래하기 때문이다. 도파민을 만드는 아미노산인 타이로신이 뇌에서 레보도파로 변환될 때 철분도 필요하므로, 철분의 부족도 병을 유발하는 원인으로 지목되기도 한다.
철분이 부족한 빈혈이 있는 경우나 빈혈이 빈번하게 나타나는 임신 중인 경우, 그리고 철분 결핍이 흔히 나타나는 만성신장질환·요독증 환자 등에서 더 많이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밖에 카페인 음료를 섭취하거나, 온도가 매우 높거나 낮은 곳에 오래 노출되면 증상이 악화되기도 한다.
증상이 심하지 않은 하지불안증후군은 가벼운 운동과 발과 다리 마사지, 족욕, 철분 섭취를 통해 호전될 수 있다. 신원철 교수는 “운동은 과하면 안 되고 중등도의 가벼운 운동이 좋은데, 유산소 운동은 평소 심박수보다 2배 이내, 시간은 30분 이내가 적당하다”고 말했다. 또 “유산소보다 더 추천하는 것은 요가나 스트레칭으로, 잠자기 1~2시간 전에 다리를 이완시키는 스트레칭을 하면 도움이 된다”고 덧붙였다.
족욕을 할 때는 찬물과 뜨거운 물을 번갈아 하면 더 효과적이다. 뜨거운 물로만 하면 체온을 올려 증상을 더 악화시킬 수 있다. 증상 악화를 막기 위해 섭취를 피해야 할 것으로는 항히스타민제 등을 포함한 여러 약물, 카페인, 알코올 등을 들 수 있다. 반대로 철분이 많이 든 음식은 섭취하면 도움이 된다. 시금치, 조개류, 콩, 두부, 고기, 생선, 통곡물, 다크초콜릿도 도움이 된다.
이러한 대증요법에도 증상 개선이 어렵다면 약물치료로 효과적인 치료가 가능하다. 일차적인 치료제로 사용하는 약물은 도파민 작용제다. 이 계열 약물을 복용하면 80% 이상의 환자에게서 증상이 완전히 조절되지만, 고용량으로 오래 복용할 경우엔 하지불안증후군 증상이 더 심해지는 증강효과가 발생할 수 있어 가급적 필요할 때만 적은 용량으로 복용할 수 있게 주의가 필요하다. 또한 감각자극을 뇌로 전달하는 회로를 차단하는 알파델타리간드 계열의 통증 조절약물을 사용할 수도 있다. 한편 철분 결핍이 있는 경우엔 철분을 보완하는 요법도 시행한다.
김진희 세란병원 신경과 과장은 “증상이 심하지 않고 밤에 가끔 나타나는 경우에는 약물치료보다는 스트레칭, 족욕 등 비약물치료를 먼저 권한다”며 “극심한 통증이나 증상이 드러나지 않는 질환이어서 방치하면 불면증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으므로 증상이 있다면 정확한 진단으로 치료할 수 있도록 전문의를 찾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설명했다.